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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ARTICLE 자기혁신&미래경영 | 287 ARTICLE FOUND

  1. 2011/07/11 튜닝코칭_통기타교실
  2. 2011/03/11 SuccessSystem_2011
  3. 2010/09/28 우장춘이 누구인고?? (1)
  4. 2010/09/12 비행기 안에서..
  5. 2010/05/08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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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십 코칭와 함께하는 기타교실 -
  인생튜닝 기타교실


분주하고 바쁜 생활 속에서. .
새로운 힘을 주는 나만의 독특한 취미가 있다면. .
2011년 올 여름엔 ' 음악과 함께하는 코칭교실' 에 함께
참여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통기타 연주를 통해 삶이 더 여유롭고 풍성한 계기가 되십시오.
           
                   - 해운대구 체인지업 동아리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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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기간 : 7.15~10.14(총14회 /금,18:30~20:30)  
        ※7.15(금, 오픈강좌)
ㅇ장소 : 우1동 주민자치회 (다목적실/요가교실방) 
ㅇ강사 : 김정규 코치 (코칭리더십센터 대표, TLC코치)
ㅇ운영 : 기타수업 95%, 인생수업 5% (마지막 10분, 인생코칭)
ㅇ회원 : 29만원
  *수강: 15만원 / 5만*3월,
  *악기: 14만원 /기타+보면대+튜닝기+교재)
 ☞ 기타가 있는 분 / 수강료 +  교재 2만 = 17만원 
ㅇ등록 : 7.13(수)까지, 신한은행 110-203-460414(김일홍)
  ☎  담당 : 김일홍 010-4874-9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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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리더십,독서경영&북코치,자기계발&창의력

코칭리더십센터(www.coach777.com)  김정규 coach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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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진 11장
2시간 전 · · · 공유하기
    • 김정규
      내일 아침부터
      매주 토(오전7:00~8:30)
      광안리 호메르스호텔 2층에서
      26주간의 "성공시스탬"을 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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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되어 있습니다.
      더 보기
      2시간 전 ·
    • JongWook Sun 멋진 결과를 기대합니다.
      51분 전 ·
    • 김정규 감사합니다..^^
      12분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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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눈물"




부르심을 받은 사역으로 인해, 부산에 살게 된지 19년 째입니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이젠 완전히 부산 사람이 되었죠..^^   동래식물원 근처 원예교등학교 근처인가요? 우장춘로라고 하는 길이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훌륭한 지인에게 메일로 받은 글이라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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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박사(한국원예연구소장 재임시)가 왜 아직도 "씨없는 수박 만든 사람" 으로만 알려져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씨없는 수박은 '기하라 히토시' 라는 이름의 일본인 박사가 처음 만들었고, 그걸 우 박사가 한국에 들고 온것인데도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장춘 박사는 일제와 6.25전쟁이 말아먹은 불모지 한반도를, 먹고 살만한 땅으로 바꿔 놓은 구국의 위인이다.

우박사는 출생부터가 기구했다. 1898년 생인데, 아버지가 친일부대의 대대장으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역적 우범선이었다. 아관파천으로 전세 역전, 일본으로 망명한 '친일파' 우범선, 일본인 '사카이 나카'와 결혼해 2남을 낳았는데 장남이 우장춘이었다. 조국을 배신한 역적의 최후는 비참했다.
우범선은 우장춘의 나이 5살 때 대한제국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된다. 억울한 면도 있다는데, 그 문제는 그 정도 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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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우장춘 가족(가운데 우장춘. 아버지 우범선(왼쪽)의 죽음으로 이 가족은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진다)은 그야말로 떠돌이 집시만도 못한 최악의 삶을 살게 된다. 조선에선 배신자 역적의 가족, 일본에선 이용가치 없는 쓰레기 트기 가족으로 전락, 과부가 된 장춘의 어머니는 극심한 경제적 빈곤에 시달려, 우장춘을 고아원에 맡기게 되고, 조선인 우장춘은 고아원생들의 무지막지한 이지메 공격에 시달린다.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 가난하고 힘들고 폭력에 시달리고 크면, 나중에 일탈행위를 하기 마련인데 우장춘은 그 반대였다.
그는, '기어코 훌륭한 사람이 돼서 너희들에게 복수하겠다' 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장춘의 어머니는 훌륭한 여인이었다. 기어코 돈을 벌어 장춘을 집으로 데려와 대학까지 보낸다. 그것도 그냥 대학이 아니라 명문 동경제국대학을. 도쿄제국대학 농학실과을 졸업한 장춘, 일본 농림성에 취업해 혁혁한 업적을 쌓으며 승승장구한다. 일본에서 살아남는 길은 일본 이름을 쓰는 것 밖에 없었기에, 그는 결혼하려고 일본인의 양자가 돼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 라는 일본 이름을 얻었지만, 정작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 논문과 공문 기록에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한국 성인 "우"를 집어 넣었다.
그러자 조센진의 승승장구를 못봐주는 일본은 1937년 그를 해임한다. 왜? 일본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임 후 지방의 농장장으로 재취업, 연구 활동에 몰두하여 그는 일본 이민자 역사에 빛나는 태양으로 남을만큼 육종학계 최고 권위자라는 명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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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제대 재학시절 우장춘)
별 욕심 부리지 않는다면 여생을 나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자신의 아버지를 가혹한 운명의 역사 소용돌이에 끌어 들였고, 자신의 가족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혹독한 차별과 폭력의 나라였다. 일본에서 이민자가 얻을 수 없는 엄청 높은 지위를 얻긴 했으나 그건 순전히 그의 실력때문이었던 거고.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 아니 대한민국은 1947년부터 농업의 근대화를 위해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실력자 우장춘을, 역적의 아들로 낙인 찍고서도 "같은 민족" 이라는 미끼로 영입하고자 했다.
미리 '한국 농업 과학연구소' 를 만들어 우장춘을 위해 소장 자리를 공석으로 둔 상태로, 가족에게 "이적료"로 당시 엄청난 돈이었던 1백만엔을 보낼 정도로 열성이었다.

조선은 일본에게 짓밟힌 불쌍한 약자였고, 우장춘은‘난 조선에서 죄인이겠지’라는 생각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이 애타게 그를 찾기 시작하자, 아직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조선은 여전히 그의 뿌리였기에 운명이 정해준 사명으로 알고 당시 전쟁중인 한국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죄도 씻고 조국에 보은하고자, 한국 전쟁이 한참이었던 1950년 부산에 와서 그 나이에 군복무까지 했다. 초청한 관료들이 군 면제시켜 주려고 해도 우장춘은 거부하고 입대를 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쓰라고 준 돈 1백만엔을 탈탈 털어 한국에 심을 종자를 사는데 다 써 버렸다. 한국 농업 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우장춘. 당시 연구소는 소장 자리만 만들어 놓고 잠 잘 곳도, 수돗물 나오는 곳도, 전기 들어오는 곳도 안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 입을 옷도 없어서 행사장에 누더기 외투에 고무신 끌고 나갔다 할 정도로. 전쟁으로 쑥대밭된 나라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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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조차 자급자족이 안되는 나라, 이 처절한 대한민국에서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최우수 과일품종 제주감귤) 10 여년 동안 우장춘은 대한민국을 기어코 구원하고야 마는데, 최단시간 내에 배추, 무, 고추, 오이, 양배추, 양파, 토마토, 수박, 참외, 한해 두번 수확하는 벼 품종 등 20여 품종의 종자를 개발, 보급하여 국민들은 기아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업적의 핵심은 바로 우량 종자 개발. 우장춘이 손을 댄 우량 종자들은 외국 것을 능가하는 엄청난 품질로써, 이로서 대한민국에 현대 농업기술이 시작됐다. 우장춘이 얼마나 천재였는지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바로 제주 감귤이었다. 이 엄청난 작물의 종자와 재배 기술을 창작해 낸 것도 모자라, 제주와 남해안 일대에 생산지를 구축, 감귤 산업을 일으켜 세웠다. 이뿐이 아니다. 강원도 감자가 특정 바이러스에 너무 취약해 한번 창궐하면 전멸하곤 했고, 그때마다 강원도민의 상당수는 굶어죽기도 했다는데, 그가 종자를 개량시켜 면역을 가진 강력한 작물로 탈바꿈시켰다. 또 페튜니아를 화초로 가꿀수 있도록 개발해서 원예산업을 일으켜 세웠는데, 일본에서도 깜짝 놀랐던 엄청난 업적이라는 것이다.

십이지장 궤양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도 한참 실험중이던 일식이수(一植二收)의 벼를 비닐봉투에 넣어 링거병이랑 같이 걸어 놓고 관찰할 정도였다. 우장춘 박사는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해 준게 아니라 경제와 산업을 창출하는 기반까지 닦아 준 그 당시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천사였던 것이다. 근데 이승만 정권은 우장춘을 철저히 이용만 해 먹었고, 이후 국민 영웅이 되는 것에는 경계를 했고 그 권력을 나눠 가지자고 할까봐 겁을 내어, 이제는 꼬투리를 잡아 공격했다.

평소 바른 말을 잘하는 우장춘이 이데올로기 문제에 관해 입바른 소릴 했다고, '사상에 문제가 있네' 라며 출국금지 시켰고, 우 박사가 한글의 읽기, 쓰기, 듣기는 다 잘 하는데 말하기가 서툴고 대신 일본말은 잘하는 걸 알고, 당시 권력자들은 대놓고 구박하고 모욕을 주거나, 공개석상에서 ‘일본말만 지껄일 줄 알면서 무슨 애국을 하겠냐’며 망신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우장춘 박사는 어머니가 작고하셨을 때, 딸이 결혼을 했을 때도 일본으로 건너가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이 출국 금지를 시켰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 딸의 결혼도 함께 하지 못한 우장춘. 아들로서 아비로서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고, 세계적인 유전학 석학이 한국에 와서 졸지에 감금된 외국인 노동자 신세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의 과학자와 엔지니어에 대한 처절한 냉대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그럼에도 우장춘은 더 우수한 벼 품종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시키려고 끝까지 노력한, 조선인을 위해 마지막 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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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땅에서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있는 우장춘)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위해 온몸을 불살은 영웅이었다. 한국의 모든 전후 세대는 이 위대한 인물에게 큰 빚을 졌다. 1959년 죽기 하루 전 정부로부터 문화포상 받은 우장춘, "조국이 날 인정했구만... 근데 좀 일찍 해 주지..."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고 한다. 정권의 사람들은 우장춘의 업적을 기록에 남기는 것조차 소홀했다.
아니 시대의 영웅에 비해 자신들의 소홀과 무능이 역사에 드러날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서점에서 책을 찾아도, 우장춘에 관한 콘텐츠는 코흘리개 애들 교과서 한귀퉁이에 실릴 정도의 분량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구국의 영웅이자 만능 천재 과학자 우장춘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다. 권력은 자기들만의 것이어야 한다는 정치세력들의 본심에 의해, 아니 그 권력을 욕심내지 않음에도 견제에 의해 우리 역사상 이순신 등 많은 영웅들이 희생되어졌다.
권력층의 속성이 그렇더라도 국민들은 그 영웅을 지켜줬어냐 하는데, 국민들은 과실은 따 먹고 순간 열광만 했지 비겁함을 떨치지 못했다.


자료 제공 : yyw-9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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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강한 국군...





아들이 마지막 휴가를 나왔습니다.
자랑스럽게 육군 병장의 계급장을 달고 나왔습니다. 정말 시간이 바른데... 아들은 시간이 너무 안간다고 투덜 됩니다.  대학 2학년 휴학을 하고 육군에 입대했는데..
군에 가기전에 현역 입대가 불가 판정(체중 미달)이 나서, 일주일 동안 아내가 열심히 챙겨 먹이니, 현역 입대를 할 수있었습니다.
지난 군에 입대하기 전,  같이 지리산 산행을 갔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러다 전쟁 나는 것 아닌가?' '엄마 나 어떡해? 전쟁 나지 않게 여당쪽 찍지 마세요'

군인이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고 부모가 군인 자식을 걱정해야 하고,
전쟁을 겁을 내는 군인, 이 국방력 믿고 유사시 국가가 제대로 유지될 것인가?
는 생각도 들었고, 선거 결과도 그렇게 나온 것 보고 우리 인식이 이 정도구나를 실감했습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천안함으로 우리 군인가족이 죽었는데, 우리 국론은 분열되고, 적이 노리던 결과가 완벽하게 나타남도 재미있게 봐야 할까요.

나라를 빼앗긴 그 처절함, 땅,집 모든 것을 팽개치고 목숨만 건져야 하는 그 상황, 경험하지 않는 세대는 절실히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조폭 앞에 일대일 맞닥뜨리면 자랑하던 지식,권위,명예 아무 것도 소용 없을 겁니다. 경험하지 않아도 역사를 배우고 마음으로 느껴 다시는 그 역사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죠.

나라없는 설움에서 이 정도 경제성장시킨 우리나라,
가장 근본은 지켜 좋은 나라 만들어 갑시다.


저와 같은 마음으로 아들을 군에 보내고, 김동길 교수님의 글을 보고 감동이 되셨는지 보내주신 글을 올려 봅니다.  보내주신 분은 지방선거에 나가셨지만, 저는 정치에 문외한이라 깊은 생각보다는 공감하는 마음에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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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연히 본받아야 할 일이 이국땅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우리나라 사람도 이와 같은 좋은 분들이 앞다투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비행기에 올라타서 내 자리를 찾아 짐을 머리 위 짐칸에 올려놓고 앉았습니다. 한참을 날아가야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책을 한 권 갖고 오기를 잘 했지. 책 읽다가 한숨 자야겠다.”혼자서 생각했습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직전, 군인들 여럿이 일렬로 서서 복도를 걸어오더니 내 주위 빈자리에 모두들 앉았습니다. 군인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로들 가시나?” 바로 내 근처에 앉은 군인 한 명에게 물었습니다. “페타와와란 곳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2주간 특수훈련을 받은 후 아프가니스탄 전선에 배치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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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시간쯤 날랐을까, 기내 스피커에서 점심 박스를 하나에 5불씩에 판다는 안내 메시지가 들렸습니다. 동쪽 해안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기에, 시간도 보낼 겸 점심 박스를 하나 사기로 맘 먹었습니다. 돈을 꺼내려고 지갑을 찾는데, 근처에 앉아있던 군인 한 명이 친구에게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점심 박스가 5불이라니 너무 비싸다.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냥 참고 가야겠다.” 딴 군인도 동의하면서 점심을 안 사먹겠다고 합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군인들 중 아무도 점심 박스를 사먹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비행기 뒤편으로 걸어가서 승무원 아주머니에게 50불짜리 돈을 건네주곤“저기 군인들에게 모두 점심 박스를 하나씩 나누어 주세요.”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감싸 잡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제 아들도 이라크에 가서 싸웠습니다. 손님께서는 내 아들에게 점심을 사주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승무원 아주머니는 점심 박스를 열 개 집어들고, 군인들이 앉아 있는 쪽으로 가서 점심 박스를 한 개 한 개 나누어줬습니다. 그리곤 내 자리에 오더니, “손님은 어떤 걸 드실래요 쇠고기, 아니면 닭고기?” 이 아주머니가 왜 이러시나 의아하면서도 나는 닭고기를 먹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비행기 앞쪽으로 걸어가더니 일등칸에서 나오는 저녁식사 쟁반을 들고 내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으로 손님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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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를 가려고 비행기 뒷쪽으로 걸어갔습니다.어떤 남자가 저를 막았습니다. “좀 전에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저도 돕고 싶으니 이것을 받으시지요.” 그 사람은 저에게 25불을 쥐어주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기장이 좌석번호를 둘러보면서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오는데, 기장은 바로 내 자리 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기장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손님과 악수하고 싶습니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서서 기장이 내민 손을 잡았습니다. 기장은 큰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도 전에는 군인으로 전투기 조종사였습니다. 오래 전, 어떤 분이 저에게 점심을 사주셨는데, 그때 고마웠던 기억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이구, 이를 어쩌나 하면서 쑥스러워하고 있는데, 기내 모든 승객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더 날라가고, 나는 다리를 좀 움직이려고 비행기 앞쪽으로 갔습니다. 앞에서 6번째 줄인가, 앉아있던 승객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더니, 나에게 또 25불을 건넸습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꺼내고 비행기 문으로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암말없이 내 셔츠 주머니에 무언가를 쑤셔놓고 부지런히 걸어가버렸습니다.이런! 또 25불이네!

비행기에서 내려서 터미널에 들어가니까, 아까 그 군인들이 한 곳에 모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걸어가서 승객들로부터 받은 75불을 전했습니다. “당신들 기지까지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이 돈으로 샌드위치나 사들 먹어요.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을 가호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이렇게 군인 열 명이, 비행기에 동승했던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느끼며 떠났습니다.
나는 내 자동차로 걸어가면서 이 군인들을 위하여 무사히 귀환하라고 빌었습니다.이 군인들은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점심 박스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합니까. 작아도 너무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현역군인이나 재향군인이나, 그분들 모두가 사는 동안 언젠가 나라에다“미합중국 受取(받으시오)”라고 적은 수표를 바친 사람들입니다. 수표의 금액란에는 “내 모든 것, 내 목숨까지라도” 적어서 말입니다.
이것은 비할 데 없는 영광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런 영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멘트 하나 ; 이 글을, 천안함 피침으로 귀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는데도, 보복은 커녕 우리측에서 전쟁 도발할까 두려워서 만행 저지른 북괴를 옹호하며 종북후보들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일부 비겁한 군인가족 포함)에게 읽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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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어느 유력한 일간지 1면에 조그마한 사진 두 장이 실려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평생에 단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는 처지인지라 개인적으로는 할 말이 전혀 없습니다. 한 사람은 정부의 허락 없이 북한을 방문하여 누구를 만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북에 가서 대한민국 욕을 있는 대로 하며 돌아다니는 모양인데 이 자의 눈에는 김정일은 위대한 지도자로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개만도 못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직함이 목사라는데 무슨 신학교를 나오고 무슨 교회에서 시무하는지도 전혀 모르겠는데, 밥은 대한민국에서 벌어먹는지 빌어먹는지는 모르나 어쨌건 우리와 같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어서 65세만 되면 지하철을 무료 승차할 특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또 한 사람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 도의 도지사로 당선이 되었을 당시는 ‘4대강 살리기’는 절대 안 된다고 우기던 터이지만 막상 도지사가 되어 도민들의 의견을 듣고 보니 자기가 다스리는 도에서도 “4대강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그가 민주정신이 뚜렷한 도백임을 전 국민에게 알려준 셈입니다.

그런데 신문사의 아마도 ‘실수’로 대한민국을 헐뜯고 김정일을 찬양하기 위해 불법으로 북에 간 ‘김정일의 앞잡이’ 얼굴은 훤하게 웃고 있는 보기 좋은 사진을 실은 반면에, 앞으로 민주적 원칙에 따라 민주적으로 잘 해보겠다는 도지사의 얼굴은 왜 그렇게 침울한 사진을 ‘골라서’ 실었는가, 그 두 사진을 동시에 보는 이 독자의 눈이 우선 불쾌하고 마음이 또한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신문사에 알리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김정일의 앞잡이’가 거기 눌러 살지 않고 돌아오면 주리를 틀건 곤장으로 때리건 나는 상관 안 합니다. 어떤 자가 달려들어 그 놈을 밟아 죽였다고 하여도 나는 대들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놈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사이비 ‘영웅’이 되는 것일 텐데, 다른 건 몰라도 그런 놈을 제발 ‘영웅’을 만드는 일은 삼가 주시기를 당국에 간청하는 바입니다.



자료 제공 : yyw-9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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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고깃배를 타던 아버지가 풍랑에 휩쓸려 세상을 등지신 후,
어머니는 우리들을 홀로 키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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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달막한 키에 허기진 몸으로 어머니가 자식들의 입에 밥술을 떠 넣을 수 있는 길은, 생선 함지를 머리에 이고 이집저집 다리품을 파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래봐야 가족들 한 끼 식량을 사기도 빠듯한 벌이…

팔다 남은 생선 한 마리와 봉짓쌀 조금만 있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의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와~~ 엄마다!”
열두 살, 열 살, 아홉 살, 여덟 살, 고만고만한 우리의 소원은 하얀 쌀밥 한 번 푸짐하게 먹어보는 것.
그러나 언제나 밥은 모자랐고 먹을 것만 보면 우리는 허겁지겁 야단이었습니다. 서로 더 먹으려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끼니마다 밥을 반 그릇씩 남겼지만 남은 밥을 절대 우리에게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면 어머니께서는 상을 얼른 치워버리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날 따라 막내가 유난히 집착한 나머지 상다리를 잡고, 상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우뚱 기울어진 상에서 어머니의 밥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저는 그날의 그 광경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누나, 이게 머야?”

우리는 그제야 어머니가 남은 밥을 주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엎어진 밥그릇에서 튕겨 나온 것은 남은 밥이 아니라 큼직한 무 토막이었던 것입니다.
밥그릇에 쏘옥 들어가게 모양을 내어 깍은 그 무 토막 위에는 몇 개 안 되는 밥알이 아슬아슬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윤용원 <경남 창원 도의원후보자(무소속) 메일링에서..>



사진 자료 : http://photo.naver.com/view/2010022308125587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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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칭리더십센터(www.coach777.com)  김정규 coach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