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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를 넘은 영웅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

그녀는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다. 홍역, 이하선염, 수두, 백일해 등 그녀가 살던 클락스빌 마을에 어떤 돌림병이 돌든지 간에, 윌마를 빼놓고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클락스빌의 유일한 병원은 백인 전용이었다. 윌마는 다섯 살이 되기 직전 성홍열을 심하게 앓고 양쪽 폐에 모두 폐렴이 걸렸다. 이번에는 정말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중대한 고비를 넘긴 듯 보였을 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윌마의 왼쪽 다리가 한쪽으로 휘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가 왕진을 와서 잠깐 살펴보더니 소아마비 선고를 내렸다. 의사는 윌마가 살아남더라도 걷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늘 고통을 받아온 윌마 루돌프의 삶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완전 끝장이었다.
그녀는 몸이 아팠지만 천성적으로 행복한 아이였다. 다정하고 늘 밝은 성격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성품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고난의 어린 시절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은 엄청난 고통을 인내할 수 있고, 때로는 상상하지 못했던 괴력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작고 가녀린 어깨에는 그러한 기대가 끔찍한 부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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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마는 의사의 선고를 들은 후 절망의 수령에 빠졌다.  "저는 몹시 외로웠고 소외당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가라앉는 느낌에 몸을 내맡기면서 그대로 끝없이 추락했어요." 그녀를 구한 것은 가족이었다. 그들이 지치지 않고 격려하고 보살핀 덕분에 윌마는 절망을 극복하고 힘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녀는 거의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적의 아이'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의사들은 다시 걸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어머니를 믿었다." 어느 날 윌마는 자신에게 또다시 병이 찾아온 것을 느꼈고 이제는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됐어!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짓은 그만해! 더 이상 가라앉거나 방황하지 않겠어." 윌마와 어머니는 토요일마다, 내시빌에 있는 메하리 의과대학으로 가서 물리치료와 마사지를 받았다.
어머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하는 모양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가 집에 와서 똑같이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 방법을 가르쳤다.  매일매일 하루에 네 번, 어머니 또는 언니 오빠가 윌마의 다리를 마사지했다. 윌마 또한 재활치료에 열심이었다. 엄청난 고통이 뛰따랐지만, 그녀는 점점 다시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져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녀는 나아지고 있었다.


그녀가 오랜시간 재활 노력을 하는 동안 가족 외 다른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윌마는 점점 특별한 힘을 가진 소녀로 자라났다. 그리고 강한 끈기와 집중력을 가진 사람들도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녀는 특별했고 그녀 자신도 그 점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운동선수가 되는 것에 자신의 온 힘을 쏟아 붓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최고 선수들보다 잘하고 싶었던, 그녀는 클락스빌에서 제일가는 엄청난 속도, 민첩성, 기술, 의지를 가진 선수가 되었다.
이 소녀에게서 인상적인 점을 발견한 테네시 주립 대학교의 여자 육상 팀 감독이었던 에드 템플은 윌마를 여름 캠프에 초대했고,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다. 여름내내 그녀는 바람처럼 빠른 달리기 실력을 마음껏 과시했다. 윌마는 템플 감독에게 말했다. "저도 왜 그렇게 빠른지 모르겠어요. 전 그냥 달려요."


1956년, 16살이 된 윌마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림 올림픽에 미국 육상팀 대표로 나갔다. 그녀는 100미터, 200미터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으나 400미터 계주에는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윌마가 최종주자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 동메달을 땄다. 물론 윌마는 이러한 성과에 몹시 기뻐했고, 전세계에서 3등인 것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녀를 잘 모르는 것이었다. 4년 후 20살이 된 윌마는 건장한 60킬로그램이 되었다. 그녀는 대학 팀 동료들과 함께 로마로 떠났다. 

육상 선수로서 윌마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지만, 그녀가 개인별 경기에서 메달을 거머쥘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재키 로빈슨은 언젠가, 그녀가 세계 기록을 세울 거라고 예견했지만 먼 훗날의 일이라고 보았다. 100미터와 200미터 개인전에서 사람들의 관심사는 독일선수 주타 하이테였다. 그녀는 한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성이라 믿는 사람은 주타였지 윌마가 아니였다.


100미터 개인전, 총소리가 나자마자 윌마는 총알처럼 튀어나갔고, 순식간에 주타 하이네와 영국의 도로시 하이먼을 앞질렀다. 주타 하이네는 3등 도로시 하이먼은 2등을 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우아하고 빠르게 달리는 여성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200미터 경기에서 윌마는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그녀는 강한 역풍을 극복하고 24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2위와 큰 차이였다. 다시금 관중은 그녀의 속도, 품위, 아름다움에 압도당했고 그 속도를 무색하게 만드는 길고 유연한 다리의 움직임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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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미터 계주가 열리는 날 경기장은 초만원이었다. 관중들은 윌마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줄곧 선두를 지킨 주자들은 마지막 주자 윌마에게 바통을 넘겨주었지만, 그녀가 잠시 바통을 더듬은 사이 2명이 그녀의 옆을 앞질러 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람들의 입은 딱 벌어졌다. 윌마가 피스톤처럼 팔을 흔들면서, 놀라운 속도로 트랙 위를 날아갔기 때문이다. 윌마는 선두를 탈환했고, 주타 하이네와 간발의 차이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관중의 환호가 얼마나 오래 이어졌던지 메달 수여식을 시작하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최초로 올림픽 3관왕이 되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여성이었다. 한 소녀가 소아마비와, 가난과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당대의 가장 위대한 여성 운동선수,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클락스빌 시장은 윌마를 환영하기 위한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그러나 이상한 편견과 관습 때문에 백인만 참가할 수 있는 행사였다. 윌마는 클락스빌의 모든 사람들이 페레이드를 볼 수 없다면 자신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은 클락스빌 역사상 흑인과 백인이 처음으로 함께 모인 행사였다. 때때로 윌마는 금메달보다 이 점을 더 자랑스러워하곤 했다.

그녀는 분홍색 캐딜락 컨버터블을 타고, 루이빌의 흑인 지구를 돌았다. 아무도 못말리는 배짱 좋은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함께였다. 
무하마드 알리는 대중을 향해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저는 최고입니다! 저는 최고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윽고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름답고 겸손한 친구를 가리키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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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칭리더십센터(www.coach777.com) 김정규coachcl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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