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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ARTICLE 성주그룹 | 1 ARTICLE FOUND

  1. 2007/08/13 글로벌리더십 성주그룹 김성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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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칭&리더십,독서경영&북코치,자기계발&창의력










"메일로 받은..  [리디자인] 존경하는 글로벌 리더"


  2005년 11월 독일의 명품 브랜드 MCM을 인수,

   "세계 패션업계를 놀라게한 성주그룹 김성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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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 해외 시장에 진출, 연매출 천억원대를 넘은 성공한 경영인으로써 뿐만 아니라 순수익의 10%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부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세계를 손 안에 넣고 한국의 중소 패션 산업을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키며 세계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김성주 회장의 글로벌 경영을 소개한다.

 
조(동성): 안녕하십니까. 오늘 조동성이 만난 글로벌 CEO에는 '성주그룹'의 김성주 회장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성주): 안녕하십니까...

조: 우선, 우리 김성주 회장님은 대기업의 막내 딸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유명합니다. 집안의 배경부터 들어볼까요?
김: 예. 저는 굉장히 훌륭한 아버님을 모셔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정직하시고 아버님 자신이 자수성가 하셔서 깡그리 파괴된 한국 전쟁 후에 단신으로 대성그룹을 일으키셔서 서울도시가스며 경북도시가스며 한25개 계열사를 갖고 계셨고, 우리나라의 재벌기업으로는 그 에너지 분야에서 굴지의 기업을 일으키셨죠. 아버님은 대구 분이시고 유교적인 바탕하에 굉장히 가부장 적인 분이셨어요.. 아버님은 딸 셋, 아들 셋. 6명의 자녀를 뒀는데, 6년 전에 돌아가실 때 아들들에게는 기업을 3등분해서 나눠 주시고 딸들에게는 한 푼도 안 주셨죠. 남녀 차별을 하신 거죠. 딸들은 양가집에 시집가서 잘 살면 된다고 생각을 하신거죠.

조: 불만을 갖지는 않았어요?
김: 저는 사실 미리부터 알았었어요. 왜냐하면 벌써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오라버니들하고 같이 앉아 있는데 딸들한테 오라버니들 위해서 물을 떠다 주라고 하시는 거에요. 물론 저는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거는 좋지만, 그 사람들도 팔 다리가 멀쩡한데 여자들만 부엌에 들어가야 되고 남자들은 왜 안 들어가는지... 그리고 여자들은 대학교 졸업하면 그냥 중매결혼해서 시집가는게 좋은 거고 아들들은 뭐 바로 대학교 나오자마자 아버님 회사에서 쭉 클 수 있는 전혀 리스크 없이 바로 후계자로서 갈 수 있는 길이 주어진 거죠. 근데 이 모든 것이 참 다르구나. 그래서 그때 저는 아마 제가 막내였기 때문에 언니들이 중매결혼을 한다든가, 부모님을 순종해서 그 길을 꼭 가야 되는가. 왜 자기의 운명을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없는가. 왜 같은 학교를 나오고 성적도 다 좋았는데 왜 아들들은 그런 엄청난 기업을 그것도 무료로 받을 기회가 있고 여자들은 좋은 집안에 시집 가는 것만이 최대의 행복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었어요. 그래서 뭐랄까... 거의 의도치 않게 결국은 반항하는 막내딸이 되가지고 결국은 급기야 는 쫓겨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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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어떻게 쫓겨나신겁니까?
김: 제가 하버드에 있을 때 결국은 집에서 막내 딸 잃어버릴까봐. 큰 집안의 아들과 막 약혼 날짜를 정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예,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이건 완전 나 개인의 인권이 문제가 있다 해서 제가 그때 반항심에 국제 결혼을 강행했고, 그래서 그때 집에서 반대하는 국제결혼을 강행해서 그 다음 날로 깨끗이 쫓겨났죠. 그래서 쫓겨나서 학교도 그만두게 되고 나아가서 뉴욕의 블루밍델즈라는 백화점에 우연치 않게 회장님의 직속 기획팀에서 일을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게 됐죠.

조: 모든 사람과 똑같은 조건에서 (김: 그렇습니다.) 밑바닥부터 시작하신 거네요?
김: 예. 그렇습니다. 근데 저는 그때 당시  집에서 일전 한 푼 받지 못하고 뉴욕 뒷 골목에서 1센트를 아끼기 위해서 멀리 슈퍼마켓을 걸어가서 갔다 오고 또 제가 정말 하루의 서너시간도 잠을 못 잔 상태에서 또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받으면서 또 제가 패션 기업에 대해서 노하우도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됐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제가 컸다는 자체가 굉장히 감사해요. 제가 많은 부모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거는 자녀들이 귀하면 아이들을 멀리 고생을 시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시 집에서 쫓겨나서 뉴욕에서 4, 5년간 정말 처절한 고생을 한 것이지금 피가 되고 살이 돼서 이제는 어느 세계 어딜가나 겁 없이 뛰거든요.

조: 네, 그렇게 고생 끝에 패션업에 진출해서 2005년에는 독일의 명품 MCM을 인수해서 글로벌 기업의 수장이 되셨는데,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들려 주시죠...
김: 저는 외환위기가 하나 저한테는 계기가 된 거 같아요. 우리나라 GDP의 70% 이상이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정부의 통제하에 경제가 운영됐었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엄청난 돈과 정보가 정부의 간섭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대로 바뀌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급변하는 세상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한국의 시스템이 부딪혀서 외환위기라는 글로벌 태풍에 무너진거죠. 그래서 그때 저는 아 우리가 벽없는 시장에 살고 있구나. 겉으론 우리가 벽(국경)이 있다. 하지만 벽이 없구나 결국에는 한국에서 이길려면 글로벌을 이겨야 되고 글로벌을 이길려면 한국에서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했구요. 그리고 두 번째는 한국이 너무 좁아요. 왜 여기 서로가 사촌이 밭사면 배아파해요. 나가면 광활한 글로벌땅이 있는데 (조: 우리나라는 전 세계 시장의 1.5프로 밖에 안되니까...) 저는 그래서 징기스킴이 되기로 했어요. 한국의 좁은 땅에서 경쟁하지말고 저 넓은 땅을 우리가 잡아 먹으로 가자. 그동안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우리 한국을 식민지 시장처럼 잠식했는데 나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겠다. 그리고 못할 것 없다. 물론 서양인들이 우수한 디자이너들과 많은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지만 루이비 통, 구찌, 버버리와 같은 명품 브랜드 매출의 60~70% 심지어 70~80%가 아시아에서 나오고 있다면, 우리가 못 할 것 없다. 그래서 우리가 해보자. 5~6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팀들 다 우리 회장님 헛소리 하신다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거기에 완전히 매진, 회사의 사운을 걸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저희가 MCM 라이센스로 90년초에 시작을 했는데, 로얄티 내는 것만도 몇백 만불이예요. 이름만 빌리는데 그걸 계산을 해보니까 몇 년치 모아보니까 브랜드 사겠더라구요.

조: 그래서 라이센스를 획득하셨군요?
김: 예. MCM은 1976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젊은 핸드백 브랜드인데요. 그때도 라이센스를 안 주겠다는 걸 제가 땄죠. 왜냐하면 억울하게 수입만해서 로열티만 지불할 게 아니라, 우리가 빨리 생산 노하우, 디자인 노하우를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거죠. 그래서 저희가 한 94년부터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OEM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서 수출하면서 굉장히 자신감을 얻었어요. 왜냐하면 MCM이 본래 갖고 있지 않았던 새로운 백을 저희가 디자인해서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어서 미국에 대히트를 쳤어요. 그게 자카드 백이였는데 아 우리가 하면 되는구나. (조: 자카드 백) 그때는 레드 백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자카드 백을 만들어 줬거든요. 그래서 히트를 쳤어요. 그래서 아 할 수 있구나. 그런데 한편에서는 MCM 본사는 외환위기 비슷하게 겪을때 굉장히 휘청했어요. 하지만 생산기반과 노하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저희 한국은 계속 커가면서, 천억대가 넘는 매출을 일으키고 있었죠. 그래서 제가 MCM 본사를 설득 해서 71% 인수하는 그런 일이 생겼죠.

조: 그러니까 이를테면 한국에 있는 맥도널드 프랜차이즈가 맥도널드 본사를 사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군요.
김: 바로 그렇죠. 한국에서는 필라 다음이구요... 특히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한국 역사상 처음일 거예요.

조: 진정한 경쟁력이란 건 한국에서 외국기업들과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세계에 나가서 (김: 그렇죠) 세계 기업과 경쟁을 해서 이기는 건데, 김성주 회장은 중소기업으로써 그 일을해 냈다는데 의의가 큰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못가지고 있는 세계화에서 장점이 뭐가 있을까요?
김: 그러니까 뭐 장점이라면 저는 이제 특히 저희가 말했지만은 21세기가 이제 하나의 지식산업사회이고, 지식산업사회가 하는 건 이제 컨텐츠나 이런 소프트웨어사업이지 하드웨어는 지났구요. 그거는 이제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간 거거든요.

(조: 투자가 필요한 브레인 규모의 경쟁은 아니다 이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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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죠. 이제는 브레인 대신 머리가 필요한 시대가 왔거든요. 그러니까 전 전략이죠. 굉장히 소프트 전략이죠. 그런 점에서 브랜드와 컨텐츠, 문화가 중요한거죠. 그런 점에서 어떤 형의 기업이 맞는가. 저는 게릴라전을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라고 생각해요.
 
조: 게릴라전 할 수 있는 지식 사회, 컨텐츠, 문화 사업에서는 게릴라식의 아주 유동성있는 조직이 좋다 이거죠?
김: 그렇죠. 몸집이 작을수록 글로벌 스케일의 일을 하기에 좋은거죠. 저 같은 경우에는 가방모찌 없이 혼자 다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모바일 오피스가 될 수 밖에 없어요. 블랙베리(휴대폰)부터 모바일폰은 물론이고 랩탑 컴퓨터까지... 근데 그걸 안하면 제가 1년에 60번이상 비행기를 타는데 제가 사무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가 없거든요.
 
조: 아이티 능력과 교육이 중요하겠지요?
김: 그럼요. 저희는 현지에서 일하면서 교육이 진행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거 저희팀들을 데리고 다녀요. 아마 작년만 저희가 아마 여행으로만 쓴 비용이 거의 한 200만불 가까이 될 거예요. 그 자리에가서 배우고 스스로 가서 얻어라 이거죠. 그래서 적용하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런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나 이 인터넷 시대에서는 고객이 우리보다 더 똑똑하거든요. 이제는 네트워크의 사회고 그만큼 시장이 너무나 유동적이고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말 게릴라전을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훨씬 유리하지요.
 
조: 마지막으로, 김성주 회장은 성공한 기업인 뿐만 아니라, 기업 순수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고 계신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김: 네. 40~50개국 NGO들과 함께 마다카스카르라는 작은 섬나라에
 
주식회사 성주병원을 지었고, 인도 캘커타에 병원과 학교를 돕고 있는데, 저의 주요 관심사는 북한입니다. 북한에 의료기구와 어린이 교육 사업을 위해 뛰고 있구요, 제가 죽은 뒤 전 재산을 북한에 기부 할 예정입니다.
 
조: 30년 이상을 지켜봐 온 친구지만, 대단하시다는 칭찬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 별 말씀을... 저는 다만 하나님의 도구로 정말 저는 작은 빛이라 생각해요. 정말 제가 잘나서가 아니고 우린 의무로서 뛰고 있고 다만 누구보다도 먼저 글로벌을 보고 왔거든요. 많은 해택을 받은 자들이거든요. 그러면 해택을 받은 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조: 오늘은 성공한 글로벌 CEO로써 뿐만 아니라, 그 사업의 결과를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답고 숭고한 모습을 가진 그런 사업가를 오늘 만났습니다. 아마 김성주 회장보다 '성주자매'라고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릴만한 훌륭한 기업가이신데요... 많은 감명 느끼면서 오늘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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